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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역사

2022년 4월 21일 고려대 기독학생회 이해삼 선배님 9주기를 추모하며

by 운영자 posted Apr 20, 2022 Views 201

2022년 4월 21일은 이해삼 선배님의 9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선배님을 기억하며, 

2004년도 2월 2일에 뉴스앤조이라는 언론과 진행하셨던

인터뷰 기사를 다시 업로드 드립니다. 

 

(언론사 본 페이지에는 사진이 없어서 

당시 인터뷰 기자님께 부탁드려 찾을 수 있는 사진만을 따로 받았습니다. 

기사와 맞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공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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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인터뷰 1> "빈부격차 해소가 개혁이다"

  •  양정지건
  •  
  •  승인 2004.02.02 21:47

   

민노당 광진을 이해삼 위원장…"분신노동자 통해 예수를 보았다"

릴레이인터뷰의 첫 주자는 민주노동당 광진을지구당 이해삼(42·시온성교회) 위원장. 인터뷰는 1월 28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지구당사무실에서 3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이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빈부격차 해소와 복지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해삼 위원장이 그동안 걸어온 길은 어쩌면 보통 정치인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화려한 경력도 없고 내세울만한 후견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광진을지구 후보로 확정된 추미애 의원(새천년민주당)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최근 민노당 진의가 알려지면서 서민들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이 위원장이 생각하는 진정한 개혁은 빈부격차 해소와 사회복지 확충. 그는 이를 위한 대안으로 민노당이 주장하고 있는 '부유세'를 내놓았다. 이 위원장은 기존 정당이 재벌과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느라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제시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강렬히 비판했다.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드높았다. 그는 "예수는 불의에 침묵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현재 한국사회 상층부가 한국교회를 장악해 부자 편에 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노당에 투표하는 것이 사표(死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복지사회를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 역시 힘 주어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 전문이다.


교회 안에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민노당은 계급정당이 아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계급연합정당 정도다. 누구나 민노당에 가입할 수 있다. 민주노총당이라든가 운동권정당으로 인식되는 것은 방송이나 언론의 일방적인 비보도 영향이 크다. 이제 진보정당의 초석이 갖추어졌다. 민노당이 배출한 구청장이 2명이나 있고 광역의원 13명, 기초의원 40여 명이다. 그 중 누구 하나 부정부패에 연루되거나 성실하지 않다고 욕 먹는 사람이 없다. 다 지역이 선정하는 최우수의원에 뽑혔다. 민노당은 인지도가 높아지면 질수록 지지도가 높아진다. 그러나 교회 안은 어떤가. 일반국민의 인식보다 더 민감하다. 물론 민노당을 지지하는 목사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 금천에서는 목사님이 당원으로 활동 중이다. 신부 후원회장도 있다. 우리 지역에도 적극 후원하는 목사님이 있다. 설교 때 정치적 판단에 대해 정말 옳고 진리를 분별하는 이야기를 한다면 교인 중에도 민노당 지지자가 많아질 것이다. 예수는 부정직하지 않았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았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며 극우보수정당에 이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 전두환 시절 조찬기도회 열던 사람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아닌 척 하면서 그들에게 이익을 주는 당파적 활동을 했었다. 이런 것을 보며 굉장히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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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광진을지구당 이해삼 위원장. ⓒ뉴스앤조이 정미나 
최근 들어 한국교회 안에서 보수 정서가 득세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의 계급성에 원인이 있다. 성동교회 이세기 전 의원은 5개 교회 장로다. 지역주민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결국 이런 것이다. 민노당은 부자들이 기득권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벌 회사 직원은 당원이 될 수 있지만 재벌 대주주는 민노당의 성장을 원하지 않는다. 교회 열심히 다닌다고 대형교회 장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망교회같은 경우 이명박 서울시장이 장로다. 우리가 매일 판공비 지적하는데 그가 민노당을 지지하겠나. 사회 상층부에 속하는 사람들이 한국대형교회를 다 차지하고 있다. 성경의 극히 일부 내용을 가지고 속으로는 당파적이면서, 속으로는 부자 편에 서서 가난한 사람들 쥐어짜는 일에 동조하면서, 겉으로는 평화를 외친다. 그런 교회에 다니거나 거기서 장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런 사람들이 부패정권이나 정당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자신들도 깊이 개입되어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큰 교회 목사님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른 것은 아니어도 목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신뢰한다. 사람의 마음은 감언이설로는 안 된다. 금방 들통이 난다. 신앙은 마음의 영역이다. 그 다음이 실천이다.

 

과거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던 교회들이 최근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눈을 뭉칠 때 처음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어렵다. 그 뒤는 굴리기만 하면 눈사람이 된다. 초기 뭉치는 과정에서 외부 물질 유혹이 강하면 강할수록, 세월이 변했다는 핑계를 대면 댈수록 흐지부지 되어서 흔적도 없이 흩어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주변의 원칙과 공신력을 튼튼히 한 후 굴려 가면 눈사람이 되는데, 취약한 상태에서 굴리다보니 중간에 포기한다.

민노당에 투표하면 사표(死票)가 되고 만다는 심리가 민노당의 가장 큰 적이 아닌가.
지난 대선 권영길 대표가 100만 표 가까이 얻었으니 사람들이 민노당 주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우리 주장을 전경련과 보수 단체들도 의식한다. 만일 권영길이 10만 표를 얻었다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절대 사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표가 안 나오면 그만큼 시기가 늦어지는 것이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유럽 각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개인의 어려움을 사회에서 해결해주는 것이 복지사회다. 돈 없어서 교육과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없는 것이 복지사회다. 민노당 표가 적을수록 복지사회는 늦게 올 것이다. 200만 표 얻으면 5년이고 500만이면 2∼3년 내에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1년 GNP가 500조 원이고 여기서 조세부담이 120조 원이다. 일년 예산 120조 원의 사용처를 국회가 결정한다. 사회복지를 국가예산 1순위로 쓰자는 국회의원이 늘면 그렇게 바뀌는 것이다. 미군 1인당 부담금이 1억 3천이다. 이걸 국가가 대주고 있다. 이런 부분을 줄이고 다른 것을 늘리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부자와 재벌 편에서 결정하는 사람들이 국회에 가득하니 예산 우선순위에 사회복지가 절대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이들 편에 선 사람이 도로는 놓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우선순위를 사회복지로 주장하는 사람이 국회 안에 몇 명이냐가 천지 차이다. 50명이라고 생각해 보라. 복지 예산은 늘어나고 국방비는 줄 것이다.

최근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로 가장 피해보는 것이 민노당이다. 냉소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는 본래 경제의 집중적 표현이다. 그럼에도 한국정치는 경제와 관계없이 움직인다. 국고보조금 받으면서 부정부패한다. 정치는 계급계층간의 불평등을 조정하는 것인데, 자기들 배불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당연히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하게 방치되는 것이다. 이번에 법인세를 1% 깎았다. 이렇게 되면 1년에 7300억 원을 자본가가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500억씩 뇌물을 주는 것이다.

지대조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토지는 재벌과 부자들이 거의 대부분 소유하고 있는 재산 증식 수단이다. 민노당이 주장하는 부유세로 가는 것이 가장 좋다. 부유세는 30억 이상의 재산가에게 일년에 한번 불로소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매기는 것이다. 재산세, 갑근세와는 다르다. 이렇게 하면 1년에 10조 원 이상을 더 걷을 수 있다. 이렇게 해도 부자들은 망하지 않는다. 이것을 사회복지 예산으로 돌리는 것이다. 지대로만 수입을 올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토지는 추가적 소득 수단이다. 부동산, 금융 모두 포함한 부유세로 가는 것이 합당하다. 지대조세제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민노당의 만남이 가능하다.

좋아하는 성구가 있다면.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12절까지 산상수훈을 좋아한다.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와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거든 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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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 열사의 모습에서 예수를 보았다." ⓒ뉴스앤조이 정미나 

 

지난해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근로복지공단 이용석 열사다. 분신 당시 눈앞에서 그 모습을 봤다. 그 사람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 분신하고 나서 옆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공터로 뛰어가더라. 그 모습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사람이 남긴 글을 보면 전태일 정도의 사상가다. 분신 전날 밤 편지를 썼다. 투쟁에 같이 못하는 친구들을 마음으로 용서했으면 좋겠다는 내용과 공부방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주내용이었다. 그는 박봉에 공부방 교사까지 했다. 이용석 열사는 예수처럼 살다갔다고 생각한다.

이번 총선에서 돈 적게 쓰는 선거를 위한 대책이 있다면.
현대적인 의미의 정당은 민노당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당원이 직접 후보를 선출하고 당비로 선거를 치르고 당원이 직접 발로 뛰어 선거운동을 한다. 선거비용으로 사무실 임대료, 기탁금 1500만원, 홍보비 2000만원 등 5000만원을 예상한다. 밥값 등은 자기 돈으로 할 것이다. 다른 정당이 돈을 많이 쓰는 이유는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정강정책을 보라. 친목회도 취지를 알아야 가입하고 불우이웃돕기를 해도 목적을 알아야 한다. 놀랍게도 열린우리당의 정강정책은 1페이지다. 정책이 없으니 지역을 따진다. 한나라는 경상도, 민주당은 전라도, 자민련은 충청도 일부, 이런 식이다. 열린우리당이 지역주의를 지적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정치행태는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정책이 없다. 정강정책을 보고 지지했으면 좋겠다. 열린우리당의 정강정책이 무엇인가. 파병을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도 없다. 민노당은 누군든지 후보가 될 수 있다. 나 역시 다른 후보가 있었다면 안 나왔을 것이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을 만나 다른 정치인들과 도매금으로 넘어갈 때 가장 마음이 아프고 억울하다. 민노당은 당원으로 가입해도 3개월이 지나야 당권이 생긴다. 당비를 1년에 3개월 이상 밀리면 당권을 안 준다. 놀랄 일이 아니다. 친목회도 돈 안 내면 얼굴 내밀기 어렵다. 총무도 안 시켜 준다. 정치는 더 엄격해야 한다. 이것이 정상이다. 떳떳한 진성당원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민노당이다.

지역정책이 있다면.
구의원 선거나 지자체장 선거는 지역현안이 논쟁이 될 수 있지만 국회의원선거는 이를 넘어서야 한다. 나라의 전반적인 제도를 말해야 한다. 지역문제와 제도문제가 결합된 방지거병원을 공공병원인 '시립노인전문효병원'으로 만들기 위해 시민단체와 연계해 노력중이다. 우리나라 공공병원은 전체 병원의 8%로 OECD 국가 중 거의 꼴찌다. 노 대통령이 임기 중에 30%로 늘리겠다고 이미 약속했다. 또 최근 구의원들의 해외연수를 빙자해 말레이시아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것을 지적하며 당원들이 그 돈을 반납하라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현재 3주째 건대입구 전철역에서 진행중이다.

최근 <오마이뉴스>가 "추미애 의원은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당시 추미애 의원을 두고 '가시 돋힌 장미'라는 표현을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바늘 같은 가시'라고 표현했다. 대바늘의 의미는 이라크 파병 찬성, 주5일제 등을 비유한 것이다. 주5일제 단계별 통과는 말이 되지 않는다. 모든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는데. 장시간노동은 중소기업 이하 노동자들에 주로 해당되는 이야기다. 아직도 많은 중소기업에서 토요일 밤까지 일한다. 장시간노동은 여전하다. 단계적 실시는 평등에도 위배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는 것이다. 다른 부분은 곡해 없이 나갔지만 제목을 그렇게 뽑아서 중앙당에서 전화가 왔다 <오마이뉴스>의 편집술이 이렇다. 항의하려다가 기자 양심을 믿고 내버려뒀다. 내용과 전혀 다른 제목을 뽑은 의도가 이상하다. 지금 <한겨레>, < KBS>, <오마이 뉴스> 모두 열린우리당에 기울어 있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희망이 있었는가.
조금 있었다. 대선 직전 설문조사 결과 노무현이 이회창을 앞섰다. 우리는 이대로 결과가 나오길 바랬다. 노무현이 당선되고 민노당이 일정 표를 얻는 구도 말이다. 그러다가 표가 대선 직전 확 빠졌다. 우리 지지표가 많이 노무현에게 갔다. 이는 노무현도 아는 사실이다. 대선 전날 밤 마음을 바꾼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인터넷과 핸드폰이 아니었으면 노무현이 떨어졌을 것이다.

기대와 희망이 꺾인 계기는.
경제자유주의로 일관하는 정책과 노동자 분신에 대한 망발 때문이다. 분신으로 항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실낱같은 희망이 없는 절망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모든 정책이 신자유주의 기반으로 가고 있다. '2만 불 시대' 구호 역시 허상이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 안에 든다. 반면 사회복지는 전혀 아니다. 이런 부분을 말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노 정권이 친자본 편향으로 가고 있다. 민주노총 자체평가에서도 노무현에게 그나마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기대마저 지나치게 과다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을 보면 노무현 개인의 고뇌를 걱정하며 그를 지지하는 글이 많다. 우스운 이야기다. 최병렬은 고뇌가 없을까. 누구에게나 고뇌가 있다. 이런 식의 접근은 문제다.

최근 민노당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 현장에서 피부로 느껴지는가.
지역에서 초청 받고 하는 것을 보면 민노당이 현실에 두 발 디디고 사는 정당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선거사무실 구하는 데도 복덕방에서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 현실 세력으로 안착되는 것이 느껴진다. 요즘 당 지지도가 7% 정도 나온다.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정당이다. 민노당의 진의가 알려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서민들의 지지가 생겨나고 있다.

총선까지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높이는 것이 관건일텐데.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지지율이 높아지는 정당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인지도와 지지도가 정비례한다. 총선에서도 몇 군데는 지금 1등을 달리고 있다. 국민 정서가 기존 의원 찍지 말자는 분위기다. 지역구에서도 참신성과 외모를 보고 추미애 의원 인지도가 높지만, 그가 말하는 개혁을 구체적으로 들어본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 내가 생각하는 개혁은 다름 아닌 빈부격차 해소다. 부정부패 근절이다. 부정부패한 사람들의 재산을 차압해서라도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 노동자의 정당한 투쟁을 민법과 상법을 동원해 제한하는 것이 손배가압류다. 이전에는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을 구속을 할망정 손배가압류처럼 민법과 상법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노조는 사회법의 다스림을 받는다. 이를 가지고 손배가압류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변호사들도 민변도 이런 것을 모른다. 노동권은 사회권이다. 인권의 가장 기본이다. 생존권의 문제다. 노점상을 인정하는 이유는 노점이 그 사람의 생존권이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모른다. 차떼기 하는 한나라당은 당사가압류를 해야 한다. 돈을 그렇게 먹으니 비정규직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다.

최근 민주노총 선거가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투쟁의 가장 상위는 총파업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총파업이란 단어를 남발했다. 단어의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무노동무임금 상황에서 누가 팔 걷고 나서겠나. 많은 노동자가 참여해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긍정적으로 본다. 그렇게 될 것이다. 중소기업, 여성노동자,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에게 대의원직을 주어야 한다. 일본도 일제시대 일본에서 일하던 탄광노동자들에게 노조원 자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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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삼 위원장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문익환 목사. 
ⓒ뉴스앤조이 정미나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익환 목사님이다. 문 목사님이 돌아가시던 날, 집에 전화하니 집사람이 울고 있어서 택시를 타고 한신대에 갔다. 그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살아 있는 사람 중에는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고 진보정당이 올곧게 서는 일에 같이 하는 동지들 모두를 존경한다.

 

신앙여정에 대해 소개해달라.
고등학교 때 미션스쿨에 다녔다. 아현동에 있는 환일고등학교였는데, 월요일에 채플이 있었다. 그 전에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 사탕이나 계란 먹으러 교회 가는 정도였다. 당시 학교에 성경선생님이 있었는데 굉장히 좋으신 분이었다. 신앙이 있든 없든 모두 좋아했다. 성경도 영어로 가르쳐주셔서 공부에도 도움이 많이 됐다. 참 좋은 분이셨다. 현재는 처제가 목회하는 신월동 시온성교회에 다닌다. 개척교회다.

미션스쿨에 다녔다고 전부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닌데.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특정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다. 순복음교회, 새문안교회, 정동교회 등을 다녀봤다. 그러다가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대학부(S.C.A.)에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당시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의문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1984년 3학년 때 민정당사 점거 농성이 있었다. 여기에 대학생 200명 이상이 참가했는데, 나도 S.C.A. 이름으로 참여했다. 4학년이 되면서 KSCF 학생회장에 당선됐다. 1년 동안 활동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 최초 자료집 '광주여 민족의 십자가여'를 만들었다. 이 책이 시발이 되어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를 넘어' 등이 나왔다. 아직까지 이 일에 함께한 것을 굉장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이 책을 구하러 왔다. 당시 자료집을 500원에 팔았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자료집 발간 후 인쇄해준 아저씨는 구류 살고 나는 도망쳤다. 그 해 11월 30일 기독교회관 앞에서 집회가 있었는데, 이 집회에 참가하고 감옥에 갔다.

고등학교 때 만난 하나님과 대학에서 만난 하나님이 상당히 달랐을 것 같다.
대학에서 만난 예수님의 모습은 혁명가이자 분노하시는 분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신앙심이 깊지는 않았지만, 주로 침묵하고 사색하는 예수님을 만났다. 1980년대 문익환 목사님을 보면서 예수님처럼 살다 돌아가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문 목사님과 얽힌 일화가 있다. 1989년 1월 14일 결혼했는데, 주례를 문 목사님이 해주셨다. 1월 4일 주례 부탁을 드리고 새해인사도 할 겸 수유동에 갔다. 문 목사님 가족과 함께 솥에 붙어 있는 떡국을 긁어먹었다. 떡국을 다 먹은 후 설거지를 누가 할 것인가를 놓고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싸우더라.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문 목사님은 주례를 해주시고 보름도 못 되어 북한에 가셨다. 결혼 당시 목사님은 북한에서 초청장을 받고 결심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단식 중이었다. 결혼식날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런 얼굴로 어떻게 주례를 하실 것인가 많이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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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앞에서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한 맥팔랜드 씨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해삼 위원장(사진 가운데). 

졸업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가.
집회시위법 위반으로 1년 간 옥살이를 하고 1986 말 출옥했다. 나와서 인천 공장에 노동자로 잠입했다가 장이 안 좋아서 전북 고창으로 요양하러 갔다. 인연은 끊을 수 없는지, 요양을 마치고 기독교회관 앞에서 감옥에서 만난 제화노동자를 우연히 만났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다 하나님의 인도다. 그에게 노조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 때부터 제화근로자협의회, 제화노조, 서울지역제화노동조합을 같이 만들고 제화 일도 배운 것이 지금까지 왔다. 성수동에 와서 제화기술을 배우고 노조 일도 봤다. 제화부문에선 완전기능공은 안 되고 상견습은 된다. 구두수선 등은 다 할 수 있다. 지금은 서울지역중소기업일반노조제화지부로 되어있다. 현재 제화지부 지도위원으로 있다. 제화노동자들이 어려서부터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많아서 소위 가방끈이 짧아 겪는 고초가 많다. 내 또래 중에 알파벳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지역단체 주부교실 선생을 병행했다. 나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을 함께 했다고 평가한다. 당시 인간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학교 생활과 졸업 후 제화노동자로서의 삶 사이의 다른 점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제화노동자가 된 것은 아니다. 현실 장벽과 조건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할 경우가 많은데, 우연한 계기로 그 일을 시작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다. 당시만 해도 노동자라 하면 제조업체로 국한해서 생각했다. 이런 협소한 노동자 개념이 1987년 이후 많이 달라졌다. 민주노총 조합원 중 제조업은 19만에 불과하고 42만은 비제조업이다. 한국사회가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소영세기업과 일용직은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월급 100만 원 이하의 노동자가 5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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