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원 신인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사진 광주트라우마센터 제공
최근 광주트라우마센터 운영을 맡은 명지원(55·사진) 센터장은 31일 5·18 트라우마 생존자들의 치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묻자, “오월 어머니들을 가까이서 만났던 인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6년 3월 어머니 안성례(82) 전 알암인권도서관장을 따라 오월어머니집 개관에 힘을 보탰다. 1980년 5월 광주기독병원 간호감독으로 계엄군의 폭력에 다쳐 실려온 시민들을 돌봤던 안 전 관장은 ‘5·18’ 진상규명 투쟁에 헌신해 온 광주의 대표적인 ‘오월 어머니’이자 오월어머니집 초대 관장이다. 부친인 고 명노근(1932~2000) 전남대 교수는 1978년 ‘우리 교육지표 사건’으로 해직을 겪었고, 5·18 때 시민수습대책위원을 맡았다가 내란죄로 몰려 옥고를 치뤘다.
고교 2년 때 ‘80년 5·18’ 온가족 고초
부친은 명노근 교수 ‘시민수습위원’ 투옥
모친은 부상자 돌본 안성례 간호감독
2006년 오월어머니집 개관때부터 인연
“어머니들 치유 돕고싶어 상담 공부”
‘국립 국가폭력 트라우마센터 건립’ 추진
명지원 센터장의 어머니 안성례 오월어머니집 초대 관장이 지난 2001년 남편인 알암 명노근 교수의 1주기 추모식을 준비하고 있다. 2013년 옛 오월어머니집을 인수해 알암인권작은도서관을 열었고, 지금은 명 센터장의 동생 명진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명 센터장은 “생존자 내면의 치유의 힘을 믿고 그 힘이 발휘될 수 있도록 안내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생존자들을 꼭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 호칭엔 “온 몸으로 고통을 견디고 살아남아 주신 것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개인·가족·집단 상담과 원예·미술·음악·사진 등의 예술치유, 물리치료 등 19가지 종류의 프로그램을 총괄해왔다. 지난 5월까지 5·18 등 민주화운동과 고문 등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380여 명이 한가지 이상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2015년 국내 최초로 국제고문생존자재활협회 회원 단체로 승인받기도 했다.
“제 성격이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해요.” 재활·치유팀을 총괄하면서 일주일이면 6~7명을 만나 개인 상담도 했던 그는 초창기엔 어려움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처음엔 선생님들이 ‘너희가 우리를 알아?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뭘 치유한다고 그래?’라는 표정이셨어요.” 그 과정에서 명 센터장 역시 ‘오월 가족’이라는 점이 신뢰관계(라포) 형성에 큰 힘이 됐다.
그에게도 오월의 기억은 강하게 박혀있다. 1980년 전남여고 2학년이던 그는 5월21일 집단발포 직전 거리에서 들었던 시민들의 함성과 그날 밤새 울렸던 총소리를 잊지 못한다. 1982년 3월 조선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그는 “당연하게 학생운동을 시작”해 잔다르크를 빗댄 ‘명다르크’로 불렸다. 1985년 11월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돼 1년6개월 옥살이를 하느라 89년 2월에야 늦깎이 졸업했다. 그는 광주의 빈민가였던 양동 발산마을 인근 새날의원에서 3년 남짓 일했다. 진보성향의 의사·치과의사와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들이 빈민의료활동을 했던 거점이었다.
“무력감에 절망하고 삶을 포기했던 생존자들이 웃음을 되찾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 자신도 큰 힘을 얻습니다.” 명 센터장은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려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겨야 서로 트라우마 경험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게 되면서 자살을 시도했던 5·18 생존자가 상담을 받고 학교 경비원으로 취업하기도 했고, 5·18 이후 외톨이로 은둔하던 생존자가 색소폰 악기 연주를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해 동호회 강사가 되면서 일상으로 복귀하기도 했다. 20명의 생존자들은 ‘마이데이-맘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5·18 이후 처음으로 내면의 아픈 상처를 털어놓았다.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으로 출발한 광주트라우마센터는 그동안 시비로 운영되다가 내년부터는 국비 14억원이 투입돼 3년동안 행안부 시범사업으로 운영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처럼 ‘국립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법’ 형태의 특별법 제정이 절실한 과제다. 명 센터장은 “국립 센터 격상을 통해 인권의 가치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